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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의 모든것(국가대표포수, 연봉, 성적, 성장과정, 잡담사)

by 이슈알려주는남자 2019. 9. 10.

안녕하세요 "이슈알려주는남자"입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포수! 삼성의 안방마님 강민호선수의 학창시절, 연봉, 통산성적 등을 알아볼텐데요! 그럼 끝까지 봐주세요

 

 

강민호의 어린시절

 

강민호선수는 2985년 8월18일 제주도에서 태어났습니다. 배구선수 출신이였던 아버지의 운동신경을 이어받아 운동신경이 어렸을때부터 탁월했는데요 하지만 처음부터 야구에 관심을 가지던 소년은 아니였습니다 강민호선수는 제주신광초등학교 출신으로 학교에 야구부는 있었지만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못하였지만 어느날 전교생이 함께 야구부를 원을 가게되는 계기로 나도 야구가 하고싶다..라며 야구에 흥미가 생겼고 그이후부터 야구를 시작하며 야구에도 소질이 있음을 알리게됩니다.

 

 

중학생의 야구 유학의 길..

 

어린 강민호선수에게 중학생시절 야구를 그만둘뻔한 시련이 오게되는데요 당시 제주도에는 초등학교 야구부는 존재하였지만 중고등학교 야구부는 없었고 야구를 끝까지 하고싶었던 강민호 선수는 부모님께 타지에가서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얘기를하였으나.. 어린나이의 강민호 선수를 혼자 보내는 것이 마음에 쓰였던 부모님은 끝까지 만류하였으나 꼭 하고싶다는 강민호 선수의 뜻에 따라 야구 명문중인 포항제철중학교로 야구 유학의 길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시절 강민호선수에게는 가장 힘든시절이였다고 하는데요 어린나이에 부모님을 떠나 혼자 지내는 것도 힘들었지만 학교선배의 얼차려 등이 큰부담으로 찾아왔고 야구를 그만두고 제주도에 내려갈까? 고민도 많이 하였던 시기라고합니다.

 

이때 강민호선수는 초등학교 은사님이였던 안영숙선생님께 힘들어서 그만두고싶다라고 얘기를 전하자 선생님께서 한통의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미래의 박찬호가 될 강민호에게...."란 제목으로 편지를 쓰셨고 박찬호 선수도 힘든시절을 이겨냈기에 지금의 박찬호선수가 있다는 내용과 함께 실력과 노력을 갖춘 민호가 일찍포기하기엔 너무나 아깝다는 말에 힘을 받은 강민호선수는 끝까지 포기하지말고 큰선수가 되자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고교랭킹 1위 포수

 

 

중학교를 졸업하고 포철공고로간 강민호 선수는 1학년 시절부터 포철공고를 이끌며 공수양면 모두 뛰어난 선수로 거듭나게 됩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고교정상급포수로 자리잡게 되며 고등학교 3학년에는 전국 포수랭킹 1위의 평가를 받았으며 이펴가는 최약체팀을 이끌며 받은 평가이기에 더 주목이 되었는데요 스카우터들은 "어깨가 강해 앉아서도 2루로 송구가 가능하며 타격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높은평가를 한다"라며 강민호 선수를 평가했으며 팀전력이 약해 전국대회에서의 좋은 성적은 거두지 못했지만 200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지명 17순위로 롯데의 지명을 받게됩니다

 

지명순위가 낮다고 평가 할 수 이겠지만 당시 고교 선수중(포수)에서 제일먼저 지명되었으며 대학선수들까지 포함했을떄도 2번째 지명이며 그만큼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롯데의 강민호~ 오오오오~ 오오오오~

 

 

강민호선수는 1년차에는 비록 3경기밖에 출장을하지못하였으나 기회는 빠른시기에 오게됩니다 2년차에 최기문선수의 병역문제로 2년차부터 선발출전기회를 얻은 강민호선수는 신인으로써 좋은모습을 보이며 발전가능성을 보였고 3년차부터는 최기문 선수의 부상으로 주전으로 출전하여 타율 0.251 안타103개 홈런 9개 타점53개 득점 40개로 포수로써 공수모든 부분에서 인정받았고 아시아게임에 발탁되며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때부터 강민호선수는 2006~2008까지 점점성장하는 모습과 장타력을 갖춰가기 시작했으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포수로 발탁되어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걸게 됩니다 이 시즌(2008년) 강민호선수는 타율 292 안타 127개 홈런19개 타점 82점 득점 51점으로 중심타선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으며 처음으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국가대표와 롯데자이언츠의 중심선수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떄를 기억하시나요? 강민호 선수는 중요한 볼카운트싸움에서 꽉찬공이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하였고 심판에게 Low ball? 공이 낮아요? 라고 물었던걸 심판은 No ball이라 이해하여 퇴장조치를 하였고 이에 격분한 강민호선수는 글러브를 던졌던 모습이였는데요 다들 이순간 화가났던 모습을 강민호 선수가 대변해줬던거 같았습니다)

 

 

2009년 WBC 2010년 아시아게임 등 각종대회에서 메달을 목에걸며 2011년 시즌은 타격에 비해 약점이라 평가되었던 도루저지율 마저 3위에 올리며 2011년, 2012년, 2013년 3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명예를 받게됩니다.

 

2013년 시즌을 끝으로 FA를 얻게 된 강민호 선수는 4년 총액 75억원 역대 최고액을 갱신하며 롯데의 잔류하게되지만 2014년 시즌 성적 타율 0.229로 FA이후 먹튀가 아니냘는 소리를 들으며 힘든 시즌을 보내게 되는데요

 

하지만 이평가가 무색할만큼 2015년 시즌 최고의 한해를 보내게됩니다 시즌타율 0.311 안타 128개 홈런35개 타점 86개 역대 최초 3할과 30홈런을 넘긴 포수가 되었고 게다가 장타율, OPS에서 역대 포수 1위를 기록하며 FA먹튀 논란을 잠재우게 됩니다

 

이후 역시 프리미엄12에서도 초대 웃응을 거두게되고 2016년 롯데의 주장으로 자리잡으면서 국대와 롯데 안방을 책임지게 됩니다 이후 다시얻게된 두번째 FA 2017성적 또한 워낙 좋았고 롯데팬들은 꼭 강민호 잔류를 희망했고 롯데 또한 이에 공감하는듯 했으나 같은 금액인 80억원에 삼성으로 이적하게 되며 롯데팬들은 크나큰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강민호선수는 SNS를통해 "안녕하세요 강민호입니다 이적 발표날 많은 팬들이 SNS에서 아쉬움을 토하는 것을 보았고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내가 이정도로 큰사랑을 받아도 되는 선수인가를 생각했으며 평생 롯데에서의 팬들이 주신사랑을 잊지않겠습니다...."라며 롯데팬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하고 삼성으로 떠나게 됩니다.

 

삼성에서의 새로운 시작

 

 

작년부터 삼성에서 새출발하게 된 강민호선수는 4년연속 20홈런을 기록하며 여전한 기량을 뽐내고있지만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리기는 좌절하면서 2019년 새로운 주장이 되었습니다 올시즌 성적이 좋진 않지만 부진이 길지않았던 강민호 선수인만큼 화려한 2020년 부활을 꿈꿔봅니다.

 

 

 

강민호 선수의 통산성적

 

 

 

 끝으로 강민호 선수의 통산성적을 보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긴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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